Tracing Light_빛으로 간 사진 아산정책연구원갤러리 4.19-5.31 요즘 현대인은 눈뜨면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가파르고 불명확한 시대에 살고 있으며, 모두 '속도의 파시즘'속에 디지털화되어가면서 감성언어를 상실하고 불감증이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시대적 상황에서 그나마 위안을 삼는 것은 '기억의 정서'이다. 사람은 기억이라는 수많은 창(窓)을 통해 자아의 입구(入口)를 두드리며 자기만의 독자적인 씨앗을 품게 된다. 그 씨앗은 발아지점을 찾아 출구(出口)를 향해 나아가는데, 그 세상에서 바로 땅, 하늘, 물, 공기, 바람, 빛 등 자연적 요소와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시간의 축과 공간의 축이 이들과 뒤섞여 자연스레 발효되고, 차츰 주체적 자아가 실현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것이 감성언어를 찾아가는 본능의 한 방법인데, 현대적 정서는 디지털 문명과 시스템 속에서 시간에 끌려가며, 감성언어는 형식적 개념과 표피적 흐름에 편승하거나 망각되어가고 있다. <빛으로 간 사진전>은 이러한 정서의 문제들을 각인시켜주는 동시에 디지털로 갈아탄 사진예술가에게 묵언의 대안을 던지고 있다. 디지털 사진이미지는 현대사회의 정보와 수집, 인터넷 네트워크, 광고사진 등 자본 경제와 직결되는 매체로서 시장을 빠르게 선점하였고, 예술적 기능에서도 수고스러운 과정이 생략된 편리성과 자율성, 복제의 기능, 각종 기능의 디지털 프로그램을 통한 패턴화된 속성에 전복되었다. 여기에서 휴머니티를 다르게 번역하거나 무시한다. 사진이 사진을 복사하고 사람을 우롱하며 이미지를 다르게 전가시킨다. 한편, 디지털의 감성적 사고는 사진적 프레임에 같혀 예술적 기능을 제약하지만, 아날로그의 감성적 태도는 단순히 찍히는 재현을 뛰어넘어 예상치 못한 상상력을 도모하거나 화면 뒤에 숨어서 각자가 걸어왔던 숱한 실수의 과정과 에피소드의 축적을 어떻게 구현하는가에 주력한다. 그러한 태도는 사진이 갖는 한계의 지점에서 메타적 시선과 움직임이 동반된다. 이를 위해 작가들은 각자의 경험으로 터득한 전통적 사진기법을 수용하여 거대한 자연에 순응하고 시공간의 한계 너머 역사의 켜가 쌓인 장소를 신비적인 환영체로 담아내거나(8X10 대형 카메라, 프린팅 아웃 페이퍼/린다 코너), 작은 생명체들을 생태학적으로 연구하거나, 시간에 따라 빛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피는 관찰자로서 그 과정을 표현한다거나(바늘구멍 카메라, 포토그램/클리아 맥키나), 보는 행위로서 인간활동의 변화에 의한 대지의 변형된 풍경을 그려내거나(콜로디온 습판법, 은염인화/벤 닉슨), 이동하는 태양의 궤적에 따라 시간의 개념을 실험/연구하여 촉감과 흔적을 드러내는(수제 대형 카메라, 페이퍼 네거티브/크리스 매카우) 각기 다른 언어의 변별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사진가들에게서 나타난 작업의 태도는 그야말로 왜 사진이 회화적 예술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존중받는 지를 알게 한다. 이 전시는 우리들이 잃어버린 고유의 아날로그 감성이 무엇인지 어떠한 태도로서 대상에 접근해야 하는지를 보게 한다. 또한 사진은 단순히 재현적인 환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없는 불완전한 실수를 지켜보며 그 프로세스를 만들어가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흔적의 언어이자 생소한 불멸의 언어를 건져내는 태도일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빛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이관훈 · Project Space 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