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1> 닻프레스 주상연닻프레스는 인쇄소가 아니다. 그러나 이곳엔 디지털 인쇄 장비를 비롯, 원스톱으로 책을 만들 수 있는 각종 장비가 갖춰져 있다. 디지털 인쇄기와 낱권 PUR 제본기, 박을 찍을 수 있는 장비와 소형 활판 장비, 사진 촬영 스튜디오와 아날로그 사진 암실을 갖추고 이들은 느린 속도로 한 권 한 권의 책을 만들어 간다. 닻프레스는 인쇄 출판 산업과 동떨어진 곳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집단이다. 따라서 이들이 말하는 퀄리티는 오프셋에서의 해상력과 색재현력 같은 눈에 보이는 것과는 차원이 좀 다르다. 보다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것에 가치를 두면서 우리 시대의 책 문화를 풍요롭게 향유하고 그것을 나누는 데 더 관심이 있다. 이들은 오프셋 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대량 책 생산 제도가 결국 놓쳐 버리고 마는 소규모 책 생산의 가치를 전파하려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 디지털 프린트 시스템과 결합한 핸드메이드 책 만들기의 현장 한복판에 닻프레스가 있다. 닻프레스를 소개해 달라. 사진하는 사람, 책 만드는 사람, 디자인하는 사람. 크게 보아 이 세 가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방이다. 이 안에서 창작 활동도 하고, 전시도 하고, 출판도 하고, 여러가지 재미있는 일을 하지만 동시에 일터이기도 하다. 필요한 분들에게 예술적 편의를 제공하고, 이 안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면서 동시에 남는 공간과 여력을 가지고 창작 활동을 하는 ‘착한’ 공동체다. (웃음) 공간을 연 지는 2년 됐고, 사업자등록은 2년 반 전에 했다. 인쇄 설비가 돼 있다. 닻프레스의 취지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제가 중심이 돼 만든 곳이기 때문에 제 배경과 연결돼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고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공부한 후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샌프란시스코 예술대학 San Francisco Art lnstitute 에서 사진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하고 그 곳에서 책 만드는 일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유학 전인 2004년 개인전을 할 때 운 좋게 눈빛이라는 출판사에서 사진집을 출판하게 됐다. 제 사진이 대량 유통보다는 소규모 독립 출판에 어울리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는데, 1000권이나 찍어서 교보문고 같은 서점에 돌고 있는 것이 이상하고 어색하게 느꼈다. 또 제작 부문에서 퀄리티 컨트롤이 전혀 안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진가라고 하면 메이저 컨셉이든 주변 이야기든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꾸준히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절감했다. 사진은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서 훨씬 더 책이 중요한 매체다. 이런 것에 대한 불만, 아쉬움, 욕망을 소지한 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제 친한 (외국인) 친구 중 사진을 하는 작가가 소규모 스튜디오를 내서 책을 만들어 주는 일을 시작했다. 디지털 인쇄 시스템이었는데 한 권이든, 세 권이든, 열 권이든, 스튜디오 안에서 사람 손을 거쳐서 완성도 있는 책을 척척 만들어 내는 것을 본 거다. 그것도 하루만에. 그게 너무 좋아서 거기서 책 만드는 과정 전체를 배웠다. 처음에는 굉장히 만만하고 작아 보여서, ‘아! 이런 공방을 열어서 친구들과 같이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기계를 준비해 한국에 들어왔다. 막상 오픈을 했더니 원하는 퀄리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 주로 아티스트와 학생들이 자신의 콘텐츠를 상업 출판하기 전 과정으로서 일종의 프로토타입 책,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고품질로 만들거나 가족 사진집 같은 개인 출판, 소규모 독립 출판물 따위의 작업을 주로 한다. 오프셋 인쇄의 경우 한 번에 500 권 이상 만드는 것이 기본이다. 출판사는 보통 한 번에 1000권 이상 제작해야 한다. 사진집 같은 경우는 책 제작에 투자가 많이 들어가지만 그만큼 소진이 안 돼서 재고 부담이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들이 100권만 만들겠다, 혹은 50권, 아니면 딱 10권만 고품질로 만들겠다고 할 때 우리가 그런 옵션을 제공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POD (주문형 서적 제작) 디지털 인쇄와 어떤 차별점이 있나? 우리나라에도 사진집을 출판하는 사이트가 많지만 저희의 장점은 (사진작가로서 책을 만들 때) 사용하고 싶은 재료를 쓰기 때문에 퀄리티가 굉장히 좋다는 것이다. 그간 경험을 통해 여러 가지 테스트를 거쳐 저희가 보유한 제록스 인쇄기에 최적화 된 용지를 구비해 놓고 있다. 블러브(세계 최대 온라인 북메이킹 사이트) 같은 사이트에서도 이런 셀렉션은 제공하지 못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기계는 제록스 700으로 HP인디고보다 장비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 저는 미국에서 (아까 말했던) 친구가 제록스 회사와 함께 연구하면서 최상의 포토북 궐리티를 뽑아내는 걸 확인했기 때문에 이 장비로 시작했다. 사실 제록스 회사로부터 ‘제록스에서 나오는 최상의 퀄리티다’라는, 피드백을 듣는다. 어떤 기계를 쓰더라도 그 기계를 다루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진 프린트에 익숙하고 사진 톤을 잡는다든지, 사진에 딱 맞는 종이를 테스트를 해서 사용한다든지, 소량 출판, 디지털 인쇄에 최적화된 퀄리티를 내는 노하우를 쌓아 가고 있다. 저희는 여기에 아날로그 암실도 있고, 여러가지 특별한 사진 프린트 기법들, 가령 얼마 전에 플래티늄이나 콜로디온 습판법을 사용했는데, 이렇게 저희는 다른 디지털 인쇄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프린트 궐리티를 관리할 수 있는 노하우가 조금은 있는 것 같다. 북토리 같은 대형 POD 업체와 몇프레스가 일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손을 훨씬 많이 쓴다. 가령 북토리(한국최대 온라인 북메이킹 사이트)는 대량이면서 속성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미지 업로드부터 책이 완성되는 과정까지 프로그램 안에서 자동화돼 있어서 소량도 가능하지만 반복적인 과정은 거의 기계적으로 이뤄진다고 알고 있다. 사실, 저희에게 최적 주문수량은 한 달에 300권 이하다. 공정이 훨씬 느린데 쉽게 얘기하면 풀 바르고 누르고 해서 만드는 수제 책을 만드는 방식과 POD 시스템의 중간 시스템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그럼에도 가격은 북토리, 블러브와 거의 비슷하다. 왜냐면 권당 가격이 10만원 정도 되는 것을 아직은 많은 분이 납득을 못하신다. 작가와 상담을 통해 가능한 옵션을 검토해서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어 표지에 하나하나 박을 찍는다든지 제본 방식도 누드 제본을 한다든지 소프트커버인 경우 약간 뻣뻣한 무언가로 한 번 더 싼다든지, 이런 식의 커스텀 제작이 가능하다. 아까 사진에서 책이 중요한 매체라고 했는데,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오리지널 사진 컬렉터들이 오리지널 프린트를 팔아서 그 작가의 한정본 에디션 책을 산다는 얘기가 있다. 무슨 이야기냐면 전시장에서 한장, 두장을 봐서는그 작가의 작업 전체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거다. 페인팅을 포함해 물질감이 있는 장르는 인쇄했을 때 텍스처가 평면화돼 버리지만, 사진은 오리지널을 가장 가감 없이 인쇄로 표현할 수 있는 매체다. 사진가는 죽어서 책을 남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진집을 통해서 유명해진 작가가 많다. 사진사를 공부할 때도 사진책의 역사를 공부할 정도로 유명한 작가는 그들이 낸 작품집이 굉장한 가격에 팔리고 계속 그것이 남아 있다. 어떻게 보면 유산인 거다. 사진가들이 예전에는 평생 자신의 책을 출판하는 것이 꿈일 정도였다. 물론 3000권, 5000권, 1만 권씩 1쇄, 2쇄 찍는 사진집도 분명히 있다. 그런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시장이 적은 곳에서는 사진책이면서 제작비를 건지고 2쇄까지 넘어가는 책은 보지 못했다. 아무리 유명한 사진작가도 책을 만들 때는 돈을 투자하는 것이지,이익을 남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는 사실상 사진 전문 출판사가 없다. 2004년에 제가 책을 낼 때, 당시 쿽익스프레스 프로그램으로 디자인을 해서 출판사에 드렸는데 테스트 보러 오라고 해서 갔더니 디자이너가 PC 데이터로 전부 바꿔 놓았더라. 타이포그래피도 모두 바뀌고, 상황이 굉장히 열악하구나, 사진책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출판사가 없다는 게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서양에는 굉장히 특성화된 독립 출판 겸 스페셜리티가 있는 사진책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책이 콘텐츠가 굉장히 충실하고 현대적이다. 사진 콘텐츠와 책이라는 폼이 하나가 돼서 나오는 것이다. 저희가 자랑하는 것 중에 하나가 그런 책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인데, 잘 골라 놓아서 가끔 사진과 학생들이나 디자인과 학생들 수업할 때, 그런 책을 보여 주변 많이 영감을 받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사진이라는 매체와 책은 함께했을 때 시너지가 난다고 생각한다. 사진책 외에 주로 만드는 책은? 다양하다. 작가 포트폴리오부터 시작해서 건축가 포트폴리오, 디자이너의 인디 출판물 같은 그래픽 작업도 있다. 재미있고 좋은 콘텐츠가 많아지면 그것에 맞춰서 책 제작을 커스텀으로 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닻프레스가 만드는 디지털 인쇄물이 일반 오프셋 인쇄와 비교할 때 궐리티 측면에서 어떤가? 이 프로그램을 잘 알고 지혜롭게 활용하면 오프셋과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 있다. 물론 오프셋과 비교해 디지털 인쇄가 못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타이포그래피가 앓아졌을 때 선예도가 떨어지고 종이에 따라서 인쇄가 싹 먹어 들어가는 느낌이 안 나기도 한다. 반면 어떤 사진은 디지털 인쇄에서 루미넌스와 색이 확 올라오는데, 디지털 인쇄가 종이 위에 안료가 얹어지는 방식이기 때문에 사진 느낌이 더 풍성해지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오히려 디지털 인쇄가 자기 사진에 훨씬 더 잘맞고 프린트가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 종이를 여러 가지 테스트를해 보니까 정말 흥미롭게도 안료가 잘 먹는 종이가 있다. 이렇게 해서 나온 블랙은, 오프셋에서 나오기 힘든 블랙이라고도 이야기를 한다. 뭐가 더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분명히 양쪽의 장단점이 있어서 단순히 비교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여기도 견적이 있고, 수량이 있고, 효율성 측면에서 판단할 때 당연히 오프셋 인쇄가 더 나을 때는 우리도 당연히 오프셋 인쇄를 한다. 우리는 디지털 인쇄 중에서도 소량 커스텀 제작을 할 수 있는 용션이기 때문에 (대량 제작을 해야 하는) 오프셋 인쇄로 할 수 없는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다. 의뢰부터 완료까지, 닻프레스의 프로세스를 설명해 달라. 먼저 디지럴 파일을 PDF로 변환한다. PDF를 웹하드에 올리면 닻프레스 서식의 주문서에 여러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책 사이즈와 관련해서는 최대 사이즈는 A3 종이가 들어가는 크기 이고, 중간 사이즈는 A3 절반, 작은 사이즈는 A3 의 4분의 1 이다. 제본에서는 하드커버 소프트커버 를 선택할 수 있고 저희가 정해 놓은 색상 팔레트가 있다. 그 다음에는 커버 프린트인데 커버를 프린트로 만들 수가 있고, 라미네이트를 유광이나 무광을 선택할 수가 있고 표지에 핫스탬핑으로 박을 골라서 찍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POD 업체처럼 온라인 주문을 받기 때문에 방문하지 않아도 되지만 고객의 90 %는 여기 오셔서 상담하고, 테스트 프린트도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커스텀 프린트라고 한 장 한 장을 모두 테스트하면서 만드시는 분도 있다. 지방이나 해외에 계신 고객과는 PDF를 이메일로 주고 받으며 일을 진행한다. 가격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70페이지 기준에 책 한 권이 나오는데 10만원 정도다. 가령 중간 사이즈 기본 책이 7만원, 박이 두 개가 들어가면 2만원, 표지에 사진이 삽입돼 있으면 1만원 추가해서 10만원이다. 과정을 보시면 박이나 사진 삽입 같은 경우도 하나하나 자리를 맞추고 눌러서 찍는다. 이게 전부 수공인 점을 감안하면 그렇게 비싼 값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킨코스에서 만들어도 12만원 정도는 된다. 이렇게 만들 수도 없지만. 완성되기까지 시간은? 모든 자료를 받고 옵션이 정해지고 나서부터 일주일. POD 업체보다는 확실히 느린데 저희가 손으로 하는 과정을 포함해, 제본에서 책을 눌러 두는 시간을 계산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다시 만들 수 있는 기간까지 고려해 일주일을 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인쇄 업계가 프리 프레스 과정에서 교정을 위한 인쇄와 오프셋 인쇄 대안으로 소량 제작을 하는 곳이 있다. 닻프레스는 아티스트북을 특화한 곳이라고 봐도 되나? 굉장히 효율적이고 좋은 시스템을 활용해서 훨씬 더 창작에 중심 을 두는, 책 만드는 공동체 라고 보면 좋겠다. 사실 주문을 받고 운영을 하는 것 자체는 기본적인 공방 유지와 (이곳에서 일하는) 작가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것이 어느 정도 채워지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좋은 작업을 하고 싶다. 작가와 협업해서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들과 함께 퀄리티 높은 책을 만들고 싶은데 일부 북아티스트는 공예적인 부분에 치중해서 한 권에 몇백만 원이 넘는 경우도 있지만 저희가 이 시스템을 택했다는 것은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책이라는 문화를 창조적으로 향유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명인 셈이다. 디자이너, 사진가, 판화가를 포함해 책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와 함께 책 제작 노하우를 갖추는 게 목표다. 그렇지 않으면 저희의 아이댄티티를 잡을 수가 없다. 북토리 같은 곳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비생산적인 상황이고, 그렇다고 한 달에 몇천 권씩 만들어서는 모두가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적절한 주문량으로 시스템을 유지하고, 그 다음부터는 창작을 기반으로 무엇인가를 쌓아 가는 데 오랜 시간을 투자하자고, 그것에 동의한 사람들이 같이 일하고 있다. 닻프레스 설립 취지와 잘 어울리는 책의 사례를 들어 달라. 조성연 작가의 〈사물의 호흡〉을 먼저 들 수 있는데, 책자체가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을 구현해 보기 위한 닻프레스 초기 야심작이다. 원본 작품도 잉크셋 기반이었기 때문에 작품집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기에 용이했다. 굉장히 투자를 많이 했는데, 프린트부터 제본까지 여러 사람이 협업해서 만들었지만 권당 제작비가 너무 엄청나 결국 3권을 만들어 작가와 디자이너, 저희가 한 권씩 나눠 갖고 끝난 프로젝트다. 그래픽 디자이너 서동주의 <Empty Space>도 야심작 중에 하나였는데 이분이 그린 30개 경기장 이미지를 아카이빙한 작업이다. 이미지가 벡터 파일이어서 디테일이 굉장히 뛰어난 책이다. 우리 책 제작 시스템이 커버를 모두 다르게 할 수 있어, 30개 경기장을 각각 다른 표지로 만들어 현재는 (표지가 모두 다른) 30권 한정판으로 만들어진 상태다. 강선미 작가의 <SPACE-ship>의 경우, 작가가 테이핑으로 인스톨레이션 작업을하는데, 전시가 끝나면 테이프를 제거할 수 밖에 없어 작업이 없어지기 때문에 책을 만드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봐서 책을 만든 케이스다. 책 자체는 인스톨레이션 사진을 배열하는 방식으로 돼 있고 작가가 직접 붙인 테이프로 표지 디자인이 된 10개 에디션이 한 세트다. 책 맨 뒤에는 작가가 테이프를 직접 다른 모양으로 붙여서 사인을 했다. 모두 50권을 제작해 10권을 작가에게 증정하고 나머지는 저희가 판매하고 있다. 책 판매 상황은 어떤가? 아주 가끔씩 신기하게도 주문이 들어온다 저희가 더 놀란다. (웃음) 협업한 작가나 닻프레스 책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뜨겁다. (웃음)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도 소규모 디지털 인쇄가 발달한 곳인데, 거기서도 그렇고 반응은 좋다. 스페인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분께도 보여 드렸더니 다들 훌륭하다고 한다. 그냥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한편 특별히 실험적인 시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는 제작 방식이 좀 원만한 편이다. 우리나라 디지털 인쇄물의 다양성은 아직 좀 부족한 편이다. 콘텐츠가 부족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작가도 본인 책에 투자를 하기 힘든 상황이고 일반인은 ‘책을 만든다’라는 것을 무척 어렵게 생각하기 때문에 콘텐츠 저변이 넓지 못하다. 오히려 해외에서 작가들이 '이런 재미있는 것이 있는데 만들어 볼래?' 라고 메일을 보내 온다. 디자이너든 일러스트레이터든. 이 책 (<TINS >)은 전직 사진 큐레이터였던 할머니가 모은 1000개 넘는 깡통을 (본인이 직접 찍어서 보내 준 이미지로) 아카이빙한 책 이다. 우리가 디자인하고 10권을 증정하겠다는 내용으로 계약해서 진행한 프로젝트다. 할머니가 개를 사람보다 더 사랑하는 분인데 자기 개에 관련된 물건을 모두 찍어서 2탄을 만든다고 또 보내와서 만든 것이 <Dogs>다. 이 책은 클리블랜드 미술관 The Cleveland Museum of Art 이 개최한 'DIY: Photographers & Books' 라는 전시에 출품되기도 했다. 이 전시는 이런 식의 소규모 콘텐츠를 제출받아 100권 정도를 선정한 전시였다. 이것만 봐도 문화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의 저변이 우리보다는 넓은 걸 알 수 있다. 닻프레스는 매거진〈깃〉 발행사로 알려져 있다. 잡지 발행이 닻프레스 활동과 어떻게 연결돼 있나? 매거진〈깃〉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닻미술관 때문이다. 미술관 공간을 운영하게 됐는데,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공간이어서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공간 자체는 훌륭하다. 그곳에서 1년에 두 번 정도 좋은 전시를 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와서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미술관은 책과 함께 가는 곳이어야한다는 생각으로 그곳에서 하는 모든 전시 작업은 마치 도록처럼 1년에 두 번 나오는 잡지〈깃〉에 실어 ('깃'은 영어로 'feather'인데 '실어 날린다'는 뜻이고, 미술관은 물리적인 공간이라는 뜻에서 ‘닻’이다) 퍼뜨리자는 의미로 만든 것이다. 미술관 개관과 동시에 1권이 나왔고 첫 번째 이슈 주제가 ‘프레스’ press 였다 책과 관련한 작업을 하는 작가의 작업을 모아 전시를 했고 그 작가들의 작업이 잡지에 모두 담겨 있다. 그런데 적어도 잡지를 한 번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나 노동력을 다 빼고도 1000만원 정도 들기 때문에 광고도 없고 잘 팔리지도 않는 것에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해서 꾸준히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다. 2호는더 묵직하게 투자비가 많이 들어갔다. 2호를 만들고 나서는 지속 가능성을 찾지 않으면 못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3호를 만들 때 (땡스북스) 이기섭 대표께서 도와주신다고 해서 한 달 만에 디자인이 돼서 나왔는데, 당시에 2호도 100 권 정도밖에 소진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300권을 일단 만들고 그게 다 소진되면 추가로 만드는 식으로 하자 해서 닻프레스 내부에서 인쇄 제작을 하기로 했다. 이기섭 대표님이 아주 좋은 아이디어라며 닻프레스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재미있게 해 보자고 해서 책의 구조가 결정됐다. 한번 해 보자고 도전을 한 책이다 결과물을 받았을 때는 어느 것보다 보람이 있었다. 제작은 정말 까다로웠다. 표지만 오프셋 인쇄를 했고, 내지는 모두 자체 제작을 해서 제본까지 마치고 종이도 핑장히 여러 가지를 사용했다. 최근호인 4호에서는 사진 특집을 하면서 이번에는 보는 책을 만들자 해서 판형을 아예 키웠다 .4명의 작가마다 (표지가 다른) 30권씩의 에디션을 만들고, 모두 200권을 제작했다. 디자인도 우리가 한번 해 보자해서 인터뷰, 에디팅과 디자인을 모두 자체 역량으로 만든 첫번째 책이다. 이제까지〈깃〉만든 중에 제일 재미있게, 제일 편안하게, 저희 안에서 다 끝나서 기분 좋게 만들었던 호다.〈깃〉은 판매 규모가 작아서 사업 차원에서는 하기 힘든 프로젝트인 듯하다. 대부분 재고로 남아 있다. 가격도 올렸다 차라리 에디션을 넣고 가격을 만원 정도 더 올려서 지금은 3만5000원이다. 더 판매가 안 된다. (웃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우리 스피릿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켜 나가고, 한편 미술관을 같이 운영해가는 기획자의 입장에서 제작하는 책이니까. 만약 제가 이 공간을 갖고 있지 않다면 잡지를 계속 제작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일 것 같다. 기존에 있는 것을 이용해서 한다는 것을 전제하에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둘씩 쌓아가려고한다. 이 공간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보람은 무엇인가? 일단은 제가 작가 입장이라도 이런 플랫폼이 있고 같이 일할 수 있는 믿을 만한 곳이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옵션이 하나 더 있다는 것만으로 저는 자랑스럽다. 여기서 수업도 많이 한다. 디자인이나 사진을 하는 학생들에게 이런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 또 한 가지는 예술이 몇 사람을 위한 고급 취미가 아니라, 예를 들어 가족 앨범같이 일상의 사진으로 책을 만들어서 아이에게 남겨 주듯이, 일반인이 이런 것을 경험하는 데 일조하는 것도 큰 보람이다. 어떤 분이 자신의 홈레시피를 책으로 만들어 유학 간 자식에게 보내고 싶어했다. 사진 찍는 것부터 디자인하는 것까지 저희가 다 도와드렸다. 이런 일을 하며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다. 이 공간에서 일하는 작가들도 마찬가지인데, 예술가가 굳이 스타벅스 같은 곳에서 일하지 않고도 작업하면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좋다. 돈이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가고, 사업 마인드가 전혀 없기 때문에 경영은 여전히 어렵다. 땡스북스 스튜디오 이기섭 대표께서 항상 저에게 친절하게 조언해 주시는 말이, 지속가능성이 있지 않으면 뜻 있는 일이어도 몇 년 하다 지친다는 것이다. 그게 제 2년 전의 상황이었다. 매거진 〈깃> 3호를 만들면서도 이기섭 대표와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그분이 운영하시는 땡스북스 서점도 돈을 막 버는 곳은 아니지만 손실을 보는 곳은 아니라고 하더라. 그게 저의 롤모델이다. 좋은 일을 하면서도 더 이상 손해를 보지 않고 유지를 할 수 있도록 만들자가 올해 목표였는데 올 연말에는 기쁘게 파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년에는 조금 더 재미있는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길 만큼. 앞으로 닻프레스가 어떻게 발전하길 원하는지? 닻프레스는 현재 영리 사업과 비영리 사업이 섞여 있는 상황이다. 처음에는 무엇인지도 모르고 좋은 뜻만 앞세웠는데, 그게 굉장히 명확하게 구분이 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 미술관과 잡지를 묶어서 비영리 재단법인을 설립 추진 중이고, 그게 되고 나면 거기서 나오는 기금 등으로 전시와 출판에서 비영리적인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디지털 프레스 기반 책 제작 플랫폼인 '닻북스'는 영리 쪽이다. 하지만 워크숍 쪽은 비영리 개념으로 큰 부담 없이 사람들이 이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영리 쪽으로는 적당한 수익이 계속 쌓이는 정도의 책 만드는 일을 서비스업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곳을 사업적으로 구상할 때 오프셋과 경쟁이 되겠느냐, 이렇게 할 거면 차라리 퀄리티가 확 올라가야 하는데 차라리 수제책공방, 정말 바느질해서 제대로 만드는 북아트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갈등이 많았다. 지금은 예전보다는 확고해졌는데, 오프셋도 북아트도 아닌 또 다른 플랫폼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새로운 프로세스가 생기면 새로운 콘텐츠가 생긴다. 우리나라 문제점 중 하나가 다양하게 공존하지 않는 것이다. 자본에 끌려다니다 보면 대안은 없다. 사실 처음 이것을 시작할 때만 해도 “네가 사업을 하냐 사업놀이를 하냐, 스튜디오냐 공방이냐”는 식의, 너의 정체성이 뭐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명확하게 저처럼 하고 있는 곳은 없는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좀 다른데 꼭 다른 사람 뒤에 줄 서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 더 버티고, 원래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면서 가다 보면 유일하고 독특한, 닻프레스만이 할 수 있는 뭔가가 나올 거라고 믿고 가는 중이다. 조금 더 성장하고 성숙해지면 명확하게 저희 아이덴티티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픽 매거진 Graphic Design Magazine 25호 인쇄특집 Printing Issue 21~26p) <기사2> <깃3호> 땡스북스 스튜디오 디자이너 이기섭 〈깃〉은 닻프레스가 발행하는 문화예술 매거진이다. 아티스트의 작업물과 그들 인터뷰가 주요 콘텐츠다. 3호부터 작업을 했는데 보통 잡지에서 시도하지 않는 방식을 많이 활용했다. 다양한 종이를 사용하고 작가에 따라서 판형에 변화를 주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펼침면에 넣을 경우 접지 탓에 중간 부분이 끊기는 넓은 프레임의 사진 작품을 온전히 보여주기 위해 세로가 긴 판형으로 배치하는 식이다. 이런 시도가 가능했던 이유는 일반적인 인쇄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발행처인 닻프레스는 인쇄와 제본에 이르는 모든 제작 프로세스를 갖춘 공방을 보유하고 있었고, <깃> 3호를 제작하면서 이 시설을 디자인 작업에 활용하고 싶어 했다. 인쇄소에서 하기 싫어하고 꺼려하는 방식의 인쇄물을 만들고 싶다면 닻프레스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으니까. 우리도 제본 방법 같은 구체적인 제작 과정을 함께 공부하면서 만들었다. 실제로 무엇이 가능한지 알아야 잡지 디자인에 적용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처음부터 제작이 가능한 부분을 협의한 후 디자인을 진행했고, 데이터를 넘겨준 후 실질적인 제작은 맞프레스 내부에서 소화했다. 종이는 크게 3가지 종류를 사용했고,인쇄는 오프셋이 아닌 제록스 컬러 프린터로 출력했다. 인쇄된 것과 출력한 것은 느낌이 살짝 다르지만 품질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요즘은 보통 500부를 기준으로 나뉘는데,500부 이하의 소량 인쇄는 닻프레스 방식이 저렴하다. 1000부쯤 되면 오프셋 인쇄가 더 싸겠지만〈깃〉처럼 다양한 종이들을 사용하고 제본 방식도 특이하다면 이 방식이 유리한 지점이 있다.〈깃〉의 콘텐츠 자체는 시류를 타는 성격이 아니어서 한 번에 소진되는 잡지가 아니다. 창고 보관도 고민거리일 수 있는데 소량 인쇄는 그런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깃> 3호는 한꺼번에 많은 양을 제작하지 않았고 초판에 300부를 만들어 유통한 후 추가요청이 있으면 제작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인쇄 개념의 영역을 보다 넓힐 필요가 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이미 대량으로 소비되는 콘텐츠는 온라인으로 많이 넘어간 상황이다. 소량 인쇄의 경우 일년이 다르게 품질이 좋아지고 가격도 내려가고 있다. 인디고,제록스,리소프린트 같은 기술이 자연스럽게 인쇄의 대안으로 들어올 때 인쇄 환경이나 출판 환경이 풍요로워진다. 유어마인드 같은 독립출판 전문서점에서 유통되는 많은 실험적인 출판물이 이런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런 상황속에서 인쇄소도 시대의 변화를 타야 한다. 생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고급 인쇄로 가야 한다. 책 자체가 귀해지면서 책값 인상은 불가피하고 고급 콘텐츠가 책 형태로 만들어질 것이므로 인쇄소는 세부적인 요구에 꼼꼼히 신경써야 한다. 인쇄 단가가 올라가도 수요는 늘어날 것이다. 종이를 사용하는 매체는 아주 고급스러운 인쇄물이거나 저렴한 전단지로 자연스럽게 양극화될 것이다. (그래픽 매거진 Graphic Design Magazine 25호 인쇄특집 Printing Issue 109~11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