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적 리얼리즘 Magic Realism주상연 Sangyon Joo 2007년 먼 타지에서 마주친 전시는 신비로웠다. 전시된 사진에서 느껴지는 부유하는 것과 땅에 발을 디디고 있는 것 사이의 관계는 적절한 이성적인 판단이 허락되지 않을 만큼 비일상적이었고 실재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초현실적인 혹은 비일상적인 주변의 기록은 건축을 하는 이들에게 꽤나 낯설고 해석하기 힘든 사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를 본 후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한 장의 이미지가 있었다. 한 아이의 뒷모습이었다. 무언가에 둘러싸인 소년의 뒷모습은 주변과 하나되어, 마치 아이의 꿈속 환영을 재현한 듯한 이미지는 한동안 강렬하게 기억되었다. 당시 사진에서 느껴진 기이함에 이끌러 작가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인연이 닿지 않아 짧은 이메일만 주고받았었다. 2013년 11월 건축 매체의 지인으로부터 짧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작은 갤러리에서 사진 전시가 있는데 겸사겸사 그곳에서 만나자는 연락이었다. 좋은 안목을 갖추고 있는 그였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향한 전시 오프닝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전시를 준비한 사진 작가와의 짧은 첫인사 후 작품들을 꽤나 오랫동안 둘러보았다.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의 자연스러운 사물들을 기록한 사진은 낯설기도 하며 때로는 익숙하기도 한 풍경을 담고 있었다. 특히 장소를 알 수 없는 곳에서 기록한 거미줄 사진은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확히 거미줄이라기보다는 그곳에 맺힌 물방울과 투명하게 반사되고 있는 빛의 잔향을 기록한 사진이었다. 더불어 하늘과 숲 그리고 이들을 펼쳐 놓은 바닥의 사진 설치물까지 기품 있는 사진가의 시선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 많지 않은 전시 작품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테이블에 놓인 도록과 작품집을 둘러보다가 시선을 뗄 수 없는 한 장의 사진을 마주하게 되었다. 2007년 유학 시절 타지의 작은 갤러리에서 마주했던 사진 속 아이의 뒷모습이었다. 잊고 있던 기억은 언제나 우연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것이 필연적이라고 느낄 때 그 우연성은 더욱 강력하다. 프랑스의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롤랑 바르트는 사진안에서 경험되는 관통하듯 찌르는 순간과 감각을 찌르는 상처, 배인 자국 등을 의미하는 품크툼이라고 명명하였다. 사진을 해석하는 언어로서가 아닌 실재하는 경험, 즉 지각하고 기억하고 회상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한 그 순간의 찔림은 사진 작가 주상연과의 우연한 두 번째 마주침이었다. 사진 한 장이 가지는 힘은 강렬했다. 7년 전 이메일로 짧은 대화를 주고받았던 당시 그녀의 전시는 미국 서부 버클리에서열린 <sangyon Joo, Wonder on Parnassus, 2007>이었으며, 이번 서울에서의 전시는 <주상연, 지상의 빛, 2013>이었다. 전시장에서 그녀를 마주하고도 알아채지 못한 것은 기억하고 있는 작가의 영문 이름과 낯선 한글 이름 사이에 발생한 난독증 때문이며, 동시에 적지않은 시간과 장소의 변화에 무뎌진 기억 탓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우연성을 가장한 일련의 필연적 행위들, 즉 지인의 우연한 초대가 아니었더라면, 혹은 전시를 둘러보며 그곳에 놓인 책들에 무심했더라면,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사진 한 장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이 인연은 단순한 스침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개인적인 겸험은 사진으로부터 발현된 우연성을 넘어 건축을 하는 내게 특정 시간과 장소의 기억을 완전히 새롭게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건축가들은 흔히 도시를 건축물과 자연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의 풍경으로 기억하고 한다.이는 많은 경우, (특히 모더니즘 이후의 건축과 도시 구조 안에서는) 시각적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며 공간의 형태와, 질감, 물성, 혹은 특정 장소의 프로그램들과 사람들의 행위 등 대부분 물리적인 형태로 읽혀진다. 다시 말해 내가 기억하는 버클리라는 도시는 대학캠퍼스를 중심으로 직교의 그리드 안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물리적인 관계들, 즉 거리의 밀도 변화, 채워짐과 비워짐 그리고 자연과 건축물, 건물과 사람들의 행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기억이었다. 하지만 같은 시대에 같은 공간을 경험했던 주상연의 도시를 바라보는 방식은 건축가의 그것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04년의 3번째 개인전 이후 새로운 삶과 지속적인 작업의 틀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 서부로 유학을 떠난 주상연은 SFAI(San Francisco Art Institute)에서 수학하며 이방인으로서 도심의 낯선 장소를 낯선 시선을 통해 바라본 연작<Wonder on Parnassus, 2007>을 발표한다. 이 작업을 통해 새로운 장소 안에서 인간의 이성과 의식을 넘나드는 신비한 관계들을 포착하며 사물과 정신 사이에 고착되어 풀리지 않는 의문을 신화적 은유를 통해 제시한다. 하지만 그 의문은 곧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은, 그래서 어쩌면 자유로움을 획득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2009년 작품인 <중력과 은총, Grace and Gravity, 2009>은 작가가 미국 서부의 공기와 물과 바람의 기운에 충만한 경험을 담고 있다. 이는 그녀가 거주한 정원이 딸린 작은 집을 배경으로 버클리에서의 삶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는데, 도시의 거시적인 프레임이라기보다는 사적으로 경험되는 시각 너머의 장소의 촉각과 청각, 후각 심지어 사물의 미감까지 사진의 프레임 안에서 관찰하고 있다. 주상연은 그 작은 정원을 숨쉬는 자연을 잉태하는 장소로서 공기적인 움직임과 중력의 힘이 상호작용하는 지점으로 자연과 인간 사이의 혹은 하늘과 땅 사이에 견고한 경계가 무너진, 즉 둘이 아닌 하나됨을 사진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그녀가 택한 사진의 형식에서 비롯된 상황일 수도 있지만 그 결과물에서 인지되는 빛과 공기, 공간의 울림, 풀벌레의 진동, 바람에 흔들리는 풀내음은 내가 그때 경험했지만 지금은 잊고 있던 장소의 감각을 놀랍게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었다. 현대 사진은 시각예술 범주의 중심에 있지만 그녀가 전달하고 있는 것은 건축가들이 쉽게 만들어 내지 못하는, 아니 쉽게 인지하기도 힘든 장소의 감각, 즉 실체로서의 경험을 제시하고 있다.지상소(onground)에서 열린 최근 전시 <지상의 빛, 2013> 사진은 감각의 풍경을 만드는 방식에 있어 <중력과 은총>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는 그것들이 경험되는 지점, 즉 장소와 시간이 변화됐을 때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변화된다. 그녀는 미국 서부의 자연은 강한 냄새를 지니고 있다. 나무와 땅 그리고 하늘은 사람을 압도하는 기운을 가지고 있으며, 따뜻한 날씨와 강한 햇살은 식물의 질감과 색채를 풍성하게 한다. 2009년에 미국 서부에서 기록한 나무(untitled, from <Grace and Gavity> series, 2009) 사진은 실로 매혹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다. 반면 2013년 소쇄원, 부산 등을 돌며 촬영한 나무(Wood #1014, <Light on Ground> series, 0213)는 빛이 안으로 스며들어 오래 응시할 수 있는 풍광을 지니고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풍경 속의 빛을 통해 담은 그녀의 한국 풍경 사진은 이 땅의 중력을 단단하게 붙잡고 있다. 사진을 쉽게 바라보는 이들에게 주상연의 사진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 사진들은 치밀한 계획과 동시대성의 분석을 통해 자신의 개념을 역설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그녀가 직면한 현실과 그 너머의 초월적이고 신성한 관계를 찾아가는 도구이다. 작가는 지상소에서의 전시에 앞서 자연광이 드는 그 장소에서 자신의 자화상을 기록한다. 사진 <Hand #1114, 2013>는 지상소의 공간 내부로 들어오는 빛을 한 손으로 만지는 작가 자신의 이미지이다. 이는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한 손의 박수 소리'처럼 정해진 답 없는 수많은 굴레를 의미한다. 작가에게 빛은 사진의 근본인 동시에 인간의 이성과 지식을 넘어 신비함을 느끼게 하는 요소이다. 빛과 공기를 마주치는 손뼉을 통해 물질과 비물질이 만나는 접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의미를 찾고 있다. 최종 사진은 작가의 한 손과 사진을 찍는 순간 우연히 지나가던 다른 사람의 손이 필름에 겹쳐지면서 두손이 되어 질문에 답을 하는 듯하다. 그녀의 사진은 천천히 시간을 갖고 들여다 봐야 느껴지고, 읽혀지고 그리고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작품에 말을 거는 사람들에게만 비밀의 문이 열리며 새로운 공간이 나타난다. 보이는 것 뒤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한 겹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주상연 작가는 사진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기 보다는 새롭게 만나게 되는 마주침에 대해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천천히 나아가지만 꾸준한 작업과 더 나은 예술가들의 교류의 장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그녀가 발행하는 아티스트 인터뷰지 <깃>, 사진가들이 작품집을 기획 출판할 수 있는 '닻 프레스', 전시와 교류의 장인'닻 미술관'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그녀가 현실의 단단한 토대 위에 부유하는 예술적 삶의 프레임을 확장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속됨과 성스러움 사이에서 주상연의 마술적 리얼리즘(Magic Realism)이 펼쳐질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상상한다. 글ㅣ나은중+유소래(NAMELESS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