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수 없고 보이진 않지만 느낄 순 있는…도재기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검은 바람’ 출간 후 12점 전시회 여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갑철 그는 사진계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사진가다. 30여년째 전국을 누비며 이 땅의 풍광, 산과 강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아오고 있다. 그는 눈에 보이는 풍광과 사람만이 아니라 그 너머,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그 속의 정신이나 에너지를 포착하려 한다. 스트레이트 기법의 다큐멘터리 사진이지만 피사체가 선뜻 다가오지 않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때론 구도가 불안정하고, 피사체가 프레임 바깥으로 벗어나기까지 한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속에 사진가만의 짙은 서정도 느껴진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갑철(59).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호평받는 중견작가다. 하지만 아직 작업실, 암실도 없다. 사진계 사람들의 말처럼 “시류에 눈 돌리지 않고 그저 묵묵하게”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길”을 걷기 때문이다. 사진평론가 송수정은 “국제적으로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을 대표할 만하고 실제로 알음알음 주목받는 작가”라고 말한다.이갑철 사진가가 사진집 <검은 바람>(닻프레스)을 펴내고, 전시회를 열고 있다. 사진집을 엮은 닻프레스 내의 전시공간 ‘다크룸’(서울 광진구 아차산로)에서다.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들이 조용히 알음알음 찾아오는, 12점의 작품이 걸린 ‘작은 전시회’다. “홍보도 좀 하지 그러냐”고 하자 그는 “내 식대로 작업하고, 살아가는 것”이라며 씩 웃는다.<검은 바람>에는 2000년대 초반 작업한 공개되지 않은 이미지를 중심으로 48컷을 실었다. 보이는 피사체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느끼도록 하는 그의 작품세계를 오롯이 드러내는 사진들이다. 바람은 볼 수 없고 보이지 않지만, 누구든 그 바람을 느낄 수는 있다. 그의 작품들이 그렇다. 이관훈 큐레이터(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는 “빛나는 달의 앞면만을 달이라고 인식하는 우리에게 달의 뒷면은 상상 속에 존재한다”며 “인식을 넘는 초월적 진리는 보이는 욕망 뒷면으로 우리의 시선을 확장시켜 보이지 않는 본질을 보존하고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이갑철의 사진은 “복잡한 현대 도시문명의 틈바구니에 사는 우리들의 의식·무의식 세계를 감싸고 도는 그림자 같은 공기”라는 것이다. <검은 바람>은 형식에서도 독특하다. 페이퍼백인 데다 작품명은 물론 촬영 장소·연도 같은 정보도 없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람이 불 듯 이미지들만이 흐른다. 기획자이자 사진작가인 주상연 닻프레스 대표는 “사진집을 보고 나면 작품 속 소재가 아니라 그 너머의 흐름, 보이지 않는 실체가 느껴지도록 형식과 내용에 공을 들였다”고 말한다. 전시장에서 최근 만난 이 작가는 “작업에서 무의식적 직관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보이는 실체 너머를 보고 느끼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모든 것을 무의식적 직관으로 만나고자 하죠. 무엇을 어떻게 촬영해야겠다는 이성이 아니라 그냥 찰나의 순간, 무아지경 속에서 작업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하자면 무의식적 직관이 필요하고, 그러자면 대상과 혼연일체가 돼야 한다. 그가 촬영에 들어가면 걷든, 앉아있든 마음을 가다듬고 침묵하는 이유이다. 산속이든 도심이든 바흐의 음악을 듣거나, 차를 마시거나 향을 피우기도 한다. “때가 되면 작업을 하죠. 작가로서의 미적감각은 무의식 속에 녹아들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동양적이고 선(禪)적이다’ ‘신들렸다’ ‘묘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등으로 표현된다.이 작가는 그동안 ‘거리의 양키들’ ‘타인의 땅’ ‘충돌과 반동’ ‘에너지(氣)’ 등의 시리즈 작업으로 국내외에서 전시하고, 작품집을 내기도 했다. 특히 2002년 ‘충돌과 반동’전(금호미술관)은 한국 사진계를 뒤흔들 만큼 호평받으며 작품세계의 진가를 드러낸 전시로 유명하다. 그는 10여년째 인간군상·건물·빛으로 구성된 ‘도시’를 주제로 시리즈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전시는 2월20일까지. (02)447-2581 기사 링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60100&artid=201701302036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