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이 가득 낀 날이었습니다. 어린 소년이 발코니 문가에 앉아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은 채로 커튼 사이로 난 틈 뒤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봅니다. 두 시간 쯤 지났을까요, 다시 방에 들어갔을 때에도 그대로였습니다. 침묵한채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날 저녁 그 어린 소년은 자랑스럽게 작은 종이를 제게 보여줍니다. 글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흔들린 필체로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짹 한번

참새 3 마리

찌르레기 1 마리

또 다른 참새

그때 그 아이는 또 무엇을 봤을까요. 발코니의 흰색 금속 난간, 회색 콘크리트 바닥, 그리고 하늘, 넓고 빈 하늘. 그들이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가는지. 새들, 그리고 우리. 20년 후 화물선 갑판 위에서 그의 옆에 서 있습니다. 하얀 금속 난간, 물, 넓은 하늘. 얼마간의 긴 시간 후 그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종종 그의 옆에 서서 셔터 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립니다. 때로는 그 소리를 듣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죠. 그리고 가끔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내 동생 맥스.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사진 속으로 완전히 스며듭니다." _ 다니엘 켈렌버거 Daniel Kellenberger

이 책에는 맥스 켈렌버거가 세상을 세심히 바라봐온 약 40년간의 시선이 담겨있다. 어린 소년이었을 때부터 주변의 것들을 자신만의 속도로 천천히 관찰해왔던 작가는 빛에 드러난 일상의 풍경과 그 안의 선과 면, 그리고 어둠을 그만의 정돈된 시각으로 포착해 낸다. 책에 단단하게 맺혀있는 41장의 이미지를 작가의 정적인 호흡에 맞춰 바라보게 된다. 책에는 작가의 친필사인이 있는 오리지널 프린트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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